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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vo My Life/우중사색

색소폰의 회상

봄날처럼 - 우중사색 1995.07.21 22:01
[1995년 천리안 문학동호회/가을이]

 

Saxophone 의 회상

  목이 아프다. 자꾸만 목이 아파 온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고
  물상의 고철이 되어 죽고 싶다. 얼마전 까지만 해도 이렇게 목
  은 아프지 않았는데... 그 옛날 그와 함께 보냈던 시간이 그립다.
  그의 숨결과 그의 손길을 느끼고 싶다. 그를 사랑했었는데 ...
  
  내가 태어난 곳은  이곳과는 전혀 다른 이국땅 대만  이였다. 하  
  지만 거기선 잠시 머물렀을 뿐 유년 시절을 모두 보낸 곳 은 종  
  로의 허름한 악기사의 진열장 속이었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고 입아프게 떠들던 시절이었지만 
  내 눈앞에 보이는 건  단지 조그만 매점 하나와 닳을 대로 닳아  
  버린 계단 뿐으로 좁기만 했다. 
  내겐 이름표가 있었다. 사람들은 나를 '테너 색소폰'이라고 불렀
  다. 나와 함께 생활하던 악기들도 이름이 있었는데 '클라리넷',
  '소프라노 색소폰','트럼펫'등으로  불려졌다. 그들과 친해지려고   
  노력했지만  가까워지려고   하면 어디론가  가  버렸기에 정을        
  주지 않으려 했다.
  사람들은 참 호기심이 많았다. 쇼윈도우 앞에 서서 빤히 쳐다보
  는가 하면 네게 손짓을 하면 무언가를 묻기도 했다. 종종 들어
  와 만져 보기도 했지만 그냥  가기가 다반사였다. 대부분의 사람  
  이 똑같은 말을 남긴 체 말이다.
   
   " 아저씨! 이거 대만산 복제품 아니에요? 불어 보나마나 후졌
     잖아요... "
   " 아저씨... 이것보다 비싼 거 없어요? 뭐..프랑스산이나 .. "
  
  그때마다 주인 양반은 한마디씩하곤 했다.
  
   " 싸게 줄 테니 가져가세요.... "
   
  그때도 오늘처럼 견딜수  없이 목이  아팠다. 불꺼진  진열장 안  
  에서 처음으로 소리 없이 울던 일이 아직도 생생하다.
   ' 아파...아파... 벙어리가 되려나 봐... 소리내어 울고 싶어..
     차라리 숟가락이나 자동차로 태어났으면 행복할 텐데... '
  태어나 딱 한번 힘차게 소리 질러 보고 간간이 나를 보러 오는
  사람들의 입맞춤에 작게 신음할 수밖에 없었던 그 때.... 정말
  누군가 한사람 날 지켜 주길 바랬다.
  그러던 몇해 겨울이 지난 봄이 오는 어느 길목에서 였다.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무렵 누군가의 애닮은 목소리가 나의 잠을
  깨어나게 했다.
  
   " 아저씨.. 10만원만 더 깎아 주세요. 정말 돈이 없어서 그래
     요... 제발요.."
   " 에이.. 그렇게 안됩니다. "
   " 아저씨 그렇게 해주시면 그 은혜 잊지 않을게요. "
  주인은 거부했지만 몇  해째 팔리지 않고 장식품처럼 놓여 있던   
  나를 처분하고 싶었다. 생각을 하는 척하다 그는 승낙을 했다.
   " 그렇게 하세요. 그 대신 몇몇 사은 품은 빼는 겁니다. "
   " 네. 아저씨 고마워요. "
  맑은 목소리로 손님은 대답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알 수 없는 예감이 내게로  밀려왔다. 그 예  
  감과 함께 악기 케이스에 담겨졌고, 그  손님의  손에 들려졌다.
  눈을 뜬곳은 작고 초라한 방이었다. 작은 책상과 이부자리가 전
  부였다. 그날 이후 그는 내 목을  트이게 하기 위해서 거의 매일  
  산에  올랐다. 때로는  한강의 고수 부지로, 때로는 작은 공원의   
  모퉁이 에서  나를 감싸주고 사랑해  주었다. 그와  키스를 하면    
  할수록  나만의 소리를 찾을 수  있었고, 내 목소리는 점점 고와  
  져만 갔다. 그의 키스와 호흡은 열렬했다 ... 비가와 습기로 찌들  
  때 면 항상 내게로와 마른 거즈로 내 몸을 닦아주었다.
  시간이 지나고 계절이  바뀌어도 그 사랑은 변할 줄  몰랐다. 그  
  에게의 가장  큰사랑을 느낀 건 장마가  끝날 무렵 국철 유실물    
  보관 센터에서 였다. 축적된 피로로  성북부터 졸았던 그가 신도  
  림역에서  나를 둔 채 놀람에  헐레벌떡 내려 버린 거였다. 많은  
  인파 속에  그는 다시  돌아오지 못했고 영원한  이별이라는 생      
  각마져 들었다.
  하지만, 난 다시 그의 품으로 돌아갔다. 눈물을 흘리며 찾아온 
  그의 모습을 난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 기쁨의 눈물과 그가 던
  진 한마디... " 날 용서해줘. 넌 내 전부야... " 
  그를 위해 더 고운 목소리로 노래하겠다는 다짐하고 또 다짐했
  다. 그가 좋았다. 그를 위해서라면 목숨 바쳐 희생할 각오까지 
  되어 있었다.
  그해 겨울, 국내 최고의 권위와 명예를 자랑하는 '재즈 인 코리
  아'에서 그는 당당히 1위로 입상했다. 
  
   "...님, 쓰시는 악기가 대만산 복제품이라고 알고 있는데 제가 
   알기로는 소리도 안  좋고 질도 많이 떨어진다고 하는데 ..님이   
   쓰시는 악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기자가 당차게 질문했다.
   " 매우 만족합니다. 만족이 아니라 그 이상이겠지요. 좋은 악기
   건 별로  질이 좋지 않은 악기이건  연주자가 발휘하는 능력은    
   그 악기가 할 수 있는 능력의 20-30%도 못 미친다고 생각합니  
   다.   가격으로  평가하고 상표로 평가하는 건, 사람을 평할 때  
   돈이나  집안으로  평가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생각합니              
   다. 그런건 없어져야 되지 않을까요. "      
     
  앵콜송이 있었다.
  그는 나의 입술을 살며시 물었고 뜨거운 김을 살며시 불어넣어
  내 입술을 떨리게 했다. 맑고 잔잔한 우리 두사람의 음성이 퍼
  져 나갔다. 자꾸만 눈물이 흘렀다. 소리내어 울고 싶었던 그 악
  기장 속이 생각났다. 그의 입을 빌려 크게 아주 크게 울어댔다.
  청중들도 내 소리에 같이 울고 있었다. 그의 눈물과 청중의 눈
  물과 내 눈물이 범벅이 되어 버렸던 그 무대...
  
  그가 이별 한지도 어언 5년이 되었다. 영원함을 믿었던 내게 그
  와의 이별은 견딜 수 없는 충격이었다. 입상 후 그에겐 많은 방
  송 출연 요청과 계약  요청이 들어왔고 그 또한 그것에 대해 만  
  족했다.  하지만  내겐 왠지 모르게 찾아 드는  이별의 두려움을  
  주체할 수 없었다. 결국 내 직감은 맞아떨어지고 말았다.  그가 '  
  한국 XX 팝스  오케스트라'의 단원이 되면서 악기의 교체가  요  
  구되었던 것이다 . 그곳에서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프랑스산 '  
  셀머'로 색소폰을 제공해 주었다.  그는 그들의 호의를 마다했지  
  만 그건 호의라기 보다는 거의 강제적 요구였다.
    " 우리 오케스트라에서  ..님의 악기를 쓰시면 국내 최고를  자  
   랑하는 우리의  얼굴이 뭐가 됩니다.  그리고 훨씬 더  질 좋은    
   악기인데 뭘  마다하십니까? 이거 쓰십시오. 그  악기 처분하시  
   고요. "
  
  그는 날 떠나 보내기  싫어했다. 하지만 보내야만 했다. 그냥 집   
  안의 가보처럼 썩히기  싫었기에 후배 음악인들을 위해 그 사람   
  의 모교 밴드부에 기증했다. 학생들은  서로들 어떤 악기가 들어  
  왔나 궁금함에 부풀어 있었다.
   
   " 어 이거 대만산 미국 악기 복제품이잖아. 그것도 중고네... 에
   잇 기증하려면 좀 좋은 거나 기증하던지... 이런 후진걸 누가
   쓰라고... "
   " 그래도 한번 불어 볼까. "
  
  선배로 보이는 아이가 날 일으켜 세웠다. 그러곤 내 목에 마우
  스 피스를 꼽았다. 마우스  피스는 바로 내 입술이었다. 그는 좀   
  어정쩡한 자세로  내 입술을 물었다.  그런 후  불규칙한 호흡과    
  입맞춤으로 고르지 않은 숨을 들어 보냈다. 불쾌했다. 목이 찌져  
  지듯한 고통과 함께 나 조차도 듣기 싫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내 입술에서 입을 땐 후 그는 당연하다는 듯 소리쳤다.
    
   "역시 대만산은 할 수 없다니까. 이 악기 어디다 쓰냐. 갔다 버
   리는게 낫겠다."
   "1학년 애들이나 줘야겠다.  녀석들은 좀 안 좋은 악기로 연습
   해 봐야 한다니까. "
  
  그 날 이후 천덕꾸러기처럼 이렇게 계속 악기장 속에 갖혀있다.
  축축함이  느껴지는걸 보니까  밖에 비가  내리나 보다.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이면 그의 따뜻한  손길이 더욱  그리워진다. 그의    
  호흡과 숨결이 내게  찾아올 것만 같다. 다시 내게  그런 기쁨과  
  큰 울음소리를 안겨 줄 누군가를 기다리며 오늘도 아픈 목을 어  
  루만진다.rkdmf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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